질 드레 -(Gilles De Rais ) 1404 ~ 1440 10월 26일 - 화형
샤를 페로의 동화 "푸른수염의 사나이"의 모델이 된 남자 "질 드레" 입니다. 동화가 섬찟해서 작가가 참 상상력이 독특하네..라고 생각했는데, 실제 모델이 된 남자가 있다고 해서 찾아 봤습니다.
그의 본명은 "질 드 몽모랑시 라발(Gilles de Montmorency -Laval)". 명문 라바르 가문에서 태어나 샤를 7세의 부름으로 백년전쟁에 나간 그는 잔다르크의 부관으로 근무했다고 합니다. 신앙심이 깊었던 그는 잔다르크를 잘 보좌하며, 수많은 무훈을 남겼고, 25세에 프랑스 왕가의 상징인 백합을 자신의 가문의 문장에 더했고, 프랑스 육군 원수라는 직위도 받았다고 합니다. 가문의 힘은 엄청나졌겠죠?
그러나, 1431년 잔다르크가 마녀로 몰려 화형을 당하면서 그는 자신의 영토로 돌아가 이탈리아의 이단자 프레라티의 흑마술과 연금술에 빠지게 됩니다. 또한 전쟁에서의 살육의 쾌감을 느끼기 위해 소년들을 살해, 시간등 섬찟한 짓들을 서슴없이 자행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광활한 영토의 소유자였던 질 드레를 조사하지 못하고 있던 정부와 교회는 그의 후견인인 브류타뉴 공작의 협조로 '이단, 유아강간과 살육, 악마와의 게약, 자연의 섭리를 거스른 죄' 라는 죄목으로 고발할 수 있었고, 1440년 10월 26일 소아살해, 남색, 항마술, 신성모독, 이단 등의 유죄판결로 전재산을 몰수하고, 화형을 집행합니다. 전하는 이야기로, 모진 고문으로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화형대에서 한줌 재로 사라지면서 "잔다르크'를 외쳤다고 하는군요.
이야기로만 알려진 질드레의 괴이한 이상행동.. 처음에 들었을떈, 아..세기의 살인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0명이 넘는 소년들을 죽이고, 머리를 잘라 전시를 하는 등 괴이한 행동으로 역사의 잔 편에 기록으로 남아 있으니 말이입니다. 그러나, 다시한번 생각해 보면, 중세 유럽, 15세기.... 우리나라로 치면 조선시대.. 과연 얼마나 자세한 기록이, 진실이 남아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요즘같은 시대에도 거짓기록이 난무하는데 말입니다. 위의 내용을 보면, 무훈 훈장등으로 질드레의 재산과 영토는 프랑스에서 최대였다고 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그 많은 재산을 가진 그 하나를 제거함으로써 얻게 될 정부의, 교회의 이득이 정말 어마어마 했을 것이라는 거죠. 이런 생각을 하니.... 무엇이 진실인지.... 솔직히 아리까리 해집니다.
과연 그는 정말로, 후대에 알려진대로, 그런 살인마 였을까요???
- 출처 : 위키백과, dogdrip.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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